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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interest/book

한 인간의 삶에 대해 깊은 여운을 느끼며/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人間失格, 부끄럼 많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by cynthia_lee 2022.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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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부족했고, 늘 궁금했다.

나의 글에는 항상 물음표가 붙었다.

그게 싫었다. 물음표가 없을 수는 없을까? 

의문투성이의 삶이 아니라 확실한 마침표의 삶을, 시간을 보낼 수는 없을까.

 

생각해보지 않아도, 요조를 깊게 들여다보지 않아도, 나는 그와 닮은 구석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요조는 인간의 삶을 짐작할 수 없다, 인간은 무섭고 공포스러운 존재,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말하면서도 사실 그는 이 이야기 속에서 누구보다도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고자 갈망했던 인간으로 보인다. 

 

恥の多い生涯を送ってきました。

自分には、人間の生活というものが、見当つかないのです。

 

요조의 수기 첫 문장이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저에게는 인간의 삶이란 게 도무지 짐작이 되지도 않습니다.

아, 부끄럽게도 나는 이 유명한 작가와 이 유명한 소설, 하다못해 이 유명한 서문 한 문장도 알지 못했다.

그건 내가 일본문학에 관심이 없었던 것과 더불어 무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관심이 없기로서니, 거의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것 같은 저 유명한 문장도 몰랐다니,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그리고 너무나 즐겁게 이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또 오히려 지금 이 글을 읽어서 너무 좋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10년 전에 내가 이 책을 알았더라도 지금 느끼는 이와 같은 감정을 그때 느낄 수 있었을까. 80% 이상으로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 난 뭔가로 눈앞을 가린 것처럼 거의 모든 것을 보지 못했고, 많은 걸 눈앞에서 놓치며 지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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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로, 이 책에 등장하는 수기의 주인공 요조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생과 매우 닮았다. 부유한 집안의 다자녀 중 한 명, 좌익운동, 동반자살 등 다자이의 인생과 비교해보면 이거 그냥 자전적 소설을 가장한 수필인가 싶을 정도. 

사람에 대해서, 늘 공포에 벌벌 떨고, 또, 인간으로서의 제 언행에, 먼지만큼도 자신을 갖지 못하고, 그리하여 저 혼자만의 고뇌는 가슴속 작은 상자에 숨기고, 그 우울, 신경과민을, 꼭꼭 감추고, 그저 천진한 낙천성을 가장하여, 저는 익살스러운 괴짜로, 점차 완성되어 갔습니다. p.22

요조는 다른 이들의 어린 시절처럼 그저 어린아이답게 순수하지는 않았다. 어릴 적부터 주변의 인간들을 보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하고, 두려워하고, 또 자신도 결국 그런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절망감을 느낀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인간이 도대체 무엇인가, 이런 인간들 속에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눈치 보며 스스로 광대, 익살꾼을 자처하게 되었다. 그의 눈으로 바라본 자신과 그 주변인들을 보고 있으면, 요조 외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사는 건지 싶은 수준이지만, 실상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의 인간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요조는 학교에 다니면서 자신이 '존경받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움에 떨며 또 한 번 광대를 자처한다. 요조에게 존경받는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고 살다가 그 실태가 드러나 추락하게 되는 것이었다. 요조가 어린 시절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자신의 이러한(사람이지만 사람을 두려워하고 공포감을 느끼는 것,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 그에 따라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처럼 그 속에 진정으로 어울리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것) 마음과 그에 따라 드러난 자신의 행동이 거짓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요조는 스스로 광대가 되어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고 진정한 속내는 가슴 깊숙이 감춘다. 어느 날, 자신의 거짓된 광대의 모습을 같은 반 학우인 다케이치에게 들키게 되고 (다케이치에게는 나쁜 의도가 없었을 것 같다.) 엄청난 수치심을 느낀다. 의도야 어쨌든 이 일을 계기로 다케이치와 가까이 지내던 요조는 다케이치에게 두 가지의 예언을 듣게 되는데, 하나는 여자들이 요조에게 반할 것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요조가 위대한 화가가 될 것이라는 것. 

싫은 것을, 싫다고 못 하고, 또, 좋은 것도, 머뭇머뭇 도둑질하듯, 지극히 씁쓸함을 맛보며, 그렇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감에 몸부림쳤습니다. 말하자면 제게는, 양자택일의 능력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후일에 이르러, 결국 제가 ‘치욕 많은 생애’를 사는, 중대한 원인이 되는 버릇 가운데 하나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p.25

요조는 아버지가 무엇을 갖고 싶냐는 질문에도 자신의 본심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아버지가 바라는 것을 생각해내어 마치 자신이 갖고 싶었던 것처럼 행동하여 그들에게 기쁨, 아니 만족을 주고자 한다.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고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는, 그 쉬운 것조차도 요조는 할 수가 없는 인간이었다. 요조의 자라온 집안 배경, 형제들, 부모님의 성품을 보았을 때 어찌 보면 그의 선택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이라고 해야 할지도. 그렇지만 결국 그 작은 일마저도 못하는 초라한 자신은 부끄러운 생애를 살게 되었다고 회상한다. 

요조만큼이나 섬세하게 많은 프로세스를 거치지 않더라도 때로 나는 '나의 선택'이 아닌 '타인을 의식한' 선택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 선택에 대해 요조처럼 양자택일의 능력이 없다고 좌절하지는 않지만, 마음 한 켠으로는 그와 비슷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나 싶다. 왜 나는 주체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머뭇머뭇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게 바로 이 사회 속에서, 인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 아닐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 해온 일들이라서 담담하기도 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사회 속 생활에 진절머리가 날 때도 있을 것이다. 비록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만족할 만한, 사람들이 기대하는 나의 선택, 그런 것들 앞에서 얼마만큼이나 능력을 발휘해서 진정한 양자택일을 할 수 있을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는데, 그런 능력이 없다고 느끼는 요조의 삶은 그가 말하듯 치욕 많은 생애 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람에게 호소한다. 저는, 그러한 수단에는 조금도 기대를 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께 호소한들, 어머니께 호소한들, 경찰에 호소한들, 정부에 호소한들, 결국은 처세에 강한 사람이, 세상살이 요령이 좋은 사람이 하는 주장에 말려들게 되지 않을는지요. 한쪽으로 치우치는 일이 으레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어차피 사람에게 호소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저는 역시 진심은 아무것도 말하지 말고, 참고, 그렇게 광대짓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는 마음이었습니다. p.32

요조는 어린 시절, 남녀하인에게 범죄를 당한다. 그러나 그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인간 불신. 그 자체다. 요조는 많은 사람들이 앞에서는 아첨하고 뒤에서는 헐뜯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서로 속고 속이면서 맑고 밝게 명랑하게 사는 것이 인간생활이며, 자신은 그것을 이해하기 힘들고 그런 인간이 두려워 고통스럽다고 이야기한다. 서로 속고 속이면서도 서로 상처받지 않는 이상한 인간들. 요조가 본 인간의 신뢰 수준이란. 

그런데 웃기게도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인 것 같다. 결국 중요한 건 나 자신인 거니까. 나는 진정으로 마음을 다 주고 대해도, 진짜 상대방의 속마음을 알기란 어렵다. 그냥 믿을 뿐이다. 내 마음과 그대 마음이 같기를. 때로는 그런 믿음에 기댔다가 호되게 당하기도 한다. 안 그런 사람도 있을까? 특히나 믿었던 사람, 정을 준 사람에게 속았을 때는 정말 인간이란 무엇일까, 인간이 정말 싫다, 이런 모든 관계를 다 놓아버리고 싶다, 이런 생각을 무수히 했다. 그럼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내가 인간이라는 거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을 거고 줄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거다. 

어떤 사람은 만나자마자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한다. 가족얘기부터 자신의 치부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사람들, 참 신기하다. 또 어떤 사람은 아무리 친해져도 진짜 속 얘기는 좀처럼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하냐면, 후자에 조금 더 가까운 사람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게 가족이든, 친구든, 동료든, 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내 얘기를 듣고 상대방이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지 두려워서? 옛날에는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 지금 그런 얘기를 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굳이 해야 하나 하는 것과 하나는 상대방이 듣고 싶지 않을 것 같아서다. 왜냐하면 사실은 내가 듣기 싫어서다. 아무리 좋아해도 나도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자꾸만 이야기하는 건, 너무 고역이다. 상대방이 싫어서가 아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냥 앉아서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밖에 없는 게 답답해서 싫다. 물론 어떤 사람은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 힘이 된다고 하지만, 그걸 듣기만 해야 되는 것도 벅찬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슬픔이나 고통을 잘 얘기하는 것 같다.  웃긴 건 그런 사람들도 다른 사람이 싫은 소리 하면 그렇게 반기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알면서 그러는 걸까. 그래서 난 누군가에게 내가 힘든 얘기를 잘 안 하게 된다. 솔직히 그런 얘기를 하고 싶지도 않은 것도 있지만, 어차피 얘기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니까.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안 좋은 점은 확실하다. 속으로 곪는다. 밖으로 티 내지 않는다는 건 결국은 참는다는 뜻이니까. 

서로 속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누구도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서로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 채지 못한 듯한, 실로 산뜻한, 그야말로 맑고 밝고 명랑한 불신의 일례가, 인간 생활에 충만한 것 같습니다. p.34

꼭 내가 괜찮다고, 내가 그런사람이니까, 상대방도 괜찮고, 상대방도 그런 사람이라는 확증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나는 인간의 갈등이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괜찮으니까 너도 괜찮아. 이런 이기적인 생각. 난 괜찮지 않은데? 그래도 참아야 한다. 잘못하면 난 사소한 것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 부적응자가 될 수도 있다. 사람에게 호소하는 것에 냉소적이게 된 것, 그리고 그 냉소적인 마인드가 결국에는 타인에게도 적용되어,  왜 나한테 이런 얘기를? 별로 알고 싶지 않은데?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어차피 사람에게 호소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라는 요조의 말이, 너무나 이해가 되어버렸다. 남에게 호소하는 것,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것, 우는 것 모두 같은 결과로 이어진다. 하나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  너무 냉소적일 수도. 생활은 때때로 변하고 마음도 수시로 변하니까, 지금 내 생각은 그렇다. 그리고 얼마 살지 않은 인생이지만 그 안에서 깨달은 것이기도 하다. 결국 남에게 호소한다고 상황이 달라지거나 내 마음이 편해지거나 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하느냐였다. 그렇다고 타인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왜 나를 알아주지 않느냐고 나를 도와주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냥 타인과 나는 결국에는 서로 독립된 존재이고 나의 일은 내가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는, 그런 거다. 

그건, 틀림없이 그렇겠지만, 인간의 마음속에는, 더욱 까닭을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것이 있다. 욕망, 이라 해도, 부족하고, 허영, 이라 해도, 부족하고, 색과 욕, 이렇게 둘을 늘어놓아도, 부족한, 무엇인지 나 자신도 모르지만 인간 세상 밑바닥에, 경제뿐만이 아닌, 이상하게 괴담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그 괴담에 무서워 벌벌 떨고 있는 저로서는, 소위 유물론을, 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긍정하면서도, 그러나, 그로 인해, 인간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되어, 신록을 향해 눈을 뜨고, 희망의 기쁨을 느끼는 따위의 일은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p.69

쉼표가 절묘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요조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다니던 화실에서 도쿄안내인인 '호리키 마사오'를 만나게 된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요조는 이 '호리키'에게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혼자 극장에 가는 것도, 전차를 타는 것도, 계산을 하고 거스름돈을 받는 것도, 누구에게는 평범한 일들도 요조에게는 무시무시한 사건 같은 것이었다. 그런 요조가 호리키를 만나 술, 담배, 창녀, 좌익운동 등을 배우고 그를 따라 이곳저곳 다니고 함께 지내며 그동안의 인간에 대한 경계를 조금은 내려놓게 된 것 같아 보인다. 호리키는 (요조에 말에 따르면) 멍청하고 무의식적으로 광대역할을 자처하기 때문에, 굳이 요조가 광대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되는,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상대였다. 요조는 그를 따라 우연히 간 곳에서 공산주의 독서회에 들어가게 되었고, 비합법적인 운동모임에서 오히려 마음의 안정을 느낀다. 진정한 운동의 의미가 아닌, 그 운동의 껍데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살다가 감옥에 가는 것도 좋다고 말하는, 스스로를 음지인이라고 말하는 요조. 그러던 중 하숙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 요조는 처음 궁핍이라는 걸 겪게 된다. 이때에 요조는 여러 여자들에게 추파를 받는데, 그중 카페의 여종업원인 쓰네코에게 처음으로 사랑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쓰네코와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쓰네코는 죽고 요조는 살아남았다. 이 사건은 요조의 남은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아, 인간이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완전히 오해하면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고 여기고, 평생, 그걸 모른 채 살다가, 상대가 죽으면, 울면서 애도사를 읊는 존재가 아닐는지요. p.135

무기력한 요조에게 미묘한 말을 해대 요조가 학교에 다닐 생각을 못하고 패배자의 태도를 취하게 한 넙치, 그런 일상으로 벗어나기 위해 요조는 가출을 한다. 사실 말만 가출이었는데 진짜 가출이 되었다. 그래도 조금은 '친구'라고 생각했던 호리키에게 수치를 당하고, 여자들에게 얹혀사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면서 요조는 점점 술에 의지하게 되고, 다시 도망가고, 정착하고, 또다시 주저앉고. 그리고 요조가 인생에서 찾게 된 하나의 신뢰인 여자, '요시코'가 겁탈당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또 한 번의 자살기도. 그래도 요조는 살았다고 해야 할지. 술을 끊기 위해 대신 시작한 모르핀 주사약에 중독된 그는 친구와 가족에 의해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人間, 失格
인간, 실격

 

 

그런 자신을 보며 요조는 '인간, 실격'이라고 말한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요조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형의 얘기를 듣게 되었고, 형의 도움으로 고향 근처 낡은 집으로 가게 된다. 그 이후의 요조의 행방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없다. 

그래도 요조의 수기 속 큰 형은, 어릴 적 아버지가 요조에게 무엇을 갖고 싶느냐고 물어보았을 때도 대변해주고, 돈을 보내주고, 마지막까지도 그를 나름대로 구제?해주기위해서 노력한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요조도 알고 있었을까.

 

이제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제가 지금껏 살아온 아비규환의 ‘인간’ 세상에서, 오직 하나, 진리라고 여기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p.203

 

인간실격, 그렇게 두려움에 떨며, 인간 연기를 하며 노력하며 살아왔건만, 그리고 마지막에는 요시코가 모르고 건넨 모르핀을 스스로 거절하는 자신을 통해, 처음으로 무언가를 거부해보는 신기한 일까지 경험했건만, 자신은 죄인 정도가 아니라 그저 정신병자였던 거라고 말하는 그에게 연민을 느낀다면 이상한 걸까. 3개의 수기 마지막에 요조는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말을 남겼다. 저 말을 하기 전 '헤모노틴'이라는 약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와 연결해보면, 정말 절묘하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조금 아리송한 느낌이 있었다. 글을 읽으면서도 조금, 부자연스럽다고 느낀 문장들이 있었는데, 다행히 다른 출판사의 책이 있어서 한 번 더 읽어본 후, 훨씬 훨씬 인간실격을 잘 읽을 수 있었다. (그래도 원서의 느낌은 못 따라가겠지? 원서로 읽고 싶다.)

두 번째로 읽은 책은 마치 원서처럼 세로로 번역되었고, 일본어에서 사용하는 문장부호로 되어있어서 그 문장부호를 찍으며 글을 썼던 다자이 오사무의 요조, 의 생각이 더욱 와닿은 것 같다. 역시 좋은 건 한 번 더 봐야 해. 

영화, 책, 음악도, 뭔가 좋은걸 발견하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진다. 나는 재미있게 본 영화도 누구에게는 삼류일 수도 있고, 또 반대일 수도 있고, 그런 시각도 재밌다. 서평을 보니 누군가는 이 책을 싫어하는 게 확실하다. 확실히 어떤 점이 싫었는지도 알 것 같고 이해도 된다. 나 또한 어떤 부분들에 대해서는 머릿속에 작은 물음표가 그려지기도 했다. (시대와 상황이 다르니까 그런거겠거니) 그렇지만 작가가 요조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표면적인 불쾌함은 아니었을 것이다. 보는 이가 그런 불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그러나 요조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인간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아님 말고..  

 

책을 덮고 나서 가장 기억나는 부분은,

‘그런데, 자네, 오입질도 이쯤에서 집어치워, 더 이상은, 세상 사람들이, 용서하지 않을 테니’ 세상 사람들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사람의 복수형일까요. 어디에, 그 세상 사람들의 실체가 있는 걸까요. 하지만, 어쨌거나, 강하고, 엄하고, 무서운 것, 이라고만 생각하며 오늘까지 살아왔습니다만, 하지만, 호리키에게 그런 소리를 듣자, 문득, ‘세상 사람들이라는 건, 자네 아닌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왔으나, 호리키를 화나게 만들기 싫어서, 꾹 삼켰습니다. p.136

 세상 사람들이라는 건, 자네 아닌가.라는 요조의 마음속 소리였다. 세상 사람들, 그건 도대체 누구일까? 누가 누구를 용서하지 않는다는 걸까? 누구를 두려워하며 용서받지 못할까 봐 공포에 떨며 살아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요조는 그렇게 자신에게 말하는 호리키에게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네'가 날 용서하지 못하고, '네'가 날 가만두지 않고, '네'가 날 매장시킬 것이라고 외친다. 물론 진짜로 말하지는 못했지만. 실체도 없는 그 무언가, 누군가, 세상 사람들, 인간. 요조는 뒤에 세상 사람들이란 결국 개인일 것이라고 말한다. 아마 이 글을 읽지 않았을 때 세상 사람들이,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그런 식의 말을 들었다면, 나는 뭐라고 생각했을까. 그래 맞아, 저런 짓을 하면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비난하고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수도 있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다자이 오사무의 말처럼, 정말 세상 사람들이란 무엇일까. 나도 결국에는 세상 사람들 중 하나이고, 내가 모르는 누군가도 그중 하나이고, 내가 아는 사람도 그중 하나이고.

요조는 어린 시절부터 인간을 공포의 대상으로 생각했고, 인간의 생활에서 벗어나도 상관없도록 일부러 광대를 자처해왔다. 그런데도 요조의 인생은 언제까지나 그 인간, 그 세상 사람들의 생활안에 있고, 그들이 용서하지 않을까 봐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게다가 그것을 말해주는 게 그래도 ㅊ 정도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호리키. 정말 진땀이 난다. 

호리키는 내심, 나를, 진정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던 거구나, 나를 그저, 죽지 못해 사는, 수치도 모르는, 멍청한 도깨비, 말하자면 ‘산송장’으로밖에 여기지 않았구나. 그리고, 자기의 쾌락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부분만 이용하는, 그 정도 ‘친구’였구나, 하고 생각하니, 과연 유쾌한 기분은 들지 않았지만, 그러나 또한, 호리키가 나를 그렇게 보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나는 옛날부터, 인간으로서 자격이 없는 아이였다. 그러니 호리키에게 경멸당하는 것도 당연할지 모른다, 하고 고쳐 생각하면서, p.168

요조가 좋아하고 요조가 만났던 여자들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여자들은, 요조의 말처럼 요조의 고독의 냄새를 맡아 본능적으로 끌렸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조금 더 우울한 이야기를 덧붙여보면, 내가 이 책을 왜 이렇게 좋아하고, 책을 읽고 난 후 깊은 여운을 가지게 됐는지 알 수 있을 거다. 

내가 20살 정도 쯤 됬더라면, 이 책은 나에게 그렇게 큰 의미를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 때의 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다. 만약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 날 만나지 못해서야, 라고 생각할 정도로 (진짜 그런건 아니고 그런 정도라는) 멍청하고 뭘 몰랐다. 세상이 너무 눈부시게 밝고 희망으로 가득차고 즐거운 곳이었다. 그 때의 나를 생각하면 꼭 개 같다. 누구든지 잘해주면 참 좋아한다. 사람을 좋아하고 같이 있고 싶어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고 내 이야기도 해주고싶고, 통하고 싶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인간실격'이라는 책은 또 어떻게 다가갔을지 궁금하기도 하네. 그래도 한 가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 때에도 나는 스스로 조금 위선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게는 남들이 모르는 매우 가식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요조가 사람 속에 살기 위해, 존경받지 않기 위해 광대가 된 것처럼, 그리고 그 짓을 들키지 않기 위해 늘 속으로는 안절부절, 공포에 떨어야 했던 것처럼, 요조만큼도 아니고 물론 존경받을 일도 없었지만, 나도 그런 적이 많았던 것 같다. (꼭 나만 그런 건 아닐거다. 소위 비위 맞춰준다는 말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닐거라는 말이다) 난 참 남의 비위를 잘 맞춰주는 사람이었다. 상대방이 어떤 얘기를 하면서 내게 기대하는 답을, 알아채고 그에 부응해준다. 내게 부응하는 행동이 난 싦어하는 것이어도 '뭐 어때'하면서, 내 평판을 위해서 그리고 사회속에서 평범하게 살기 위해서 기꺼이 행했다. 이런 나의 '짓'들과 요조의 광대짓을 연관지어보니, 그렇게 살아야만이 두렵지 않게 살아갈 수 있었던 요조가, 그리고 늘 애써온 것 같은 내 자신이 안쓰러웠다. 뭐 일정 부분 대견하기도 하고, 지금 그렇게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다. No는 절대 No다.

아무튼, 그건 다 지나간 일이고, 현재의 나에게는 요조의 파괴적인 자기 경멸과 인간 불신, 인간에 대한 공포가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바이기에 책을 덮은 후 요조가 생각했던 한 마디, 한 마디를 새겨 생각해보았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참 웃겼던 건, 이 책 속의 그 누구보다도 요조가 가장 인간 같았다. 요조에게 범죄를 저지른 남녀 하녀와, 자기 방식대로 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권위적인 아버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학교 친구들과 선생들,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요조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어리석은 호리키, 자신이 좋아하는 마음만을 강조하는 일부 여자들, 늘 꿍꿍이를 품고 있으면서 위하는 척하는 주변 사람들.. 

그 사이에서 요조가 취할 수 있었던 가장 최선의 선택들이 결국 그를 인간실격의 길로 이끌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인간 요조가 안쓰럽다. 어쩌면 그에게서 내 안의 작은 요조를 보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살면서 늘 좋은 사람들만 만날 수는 없는 것이니까. 결국 어떤 상황에서든지 내가 스스로 최선을 다해, 인간답게 살아야만 하는 것이지. 소가 느긋한 모양새로 잠을 자다가도 돌연, 꼬리로 찰싹하고 배에 붙은 등에를 쳐 죽이는 그 본능이, 그 분노가 인간의 부분 중 하나이더라도, 우리는 어쨌든 인간실격당하지 않기 위해서 내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인간답게 살아야 하는 거다. 

 

다자이 오사무에게 요조의 수기를 건네준 다방 마담은, 요조를 떠올리면서 요조는 순수하고, 배려를 잘하고, 천사처럼 착한 아이였다고, 말한다. 요조는 완벽하게 연기에 성공했던 걸까? 아니면 요조는 원래부터 순수하고 착한 아이였던 걸까. 어느 쪽이 맞던, 요조의 자기 경멸과 인간으로서의 절망감과는 다르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요조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고, 그토록 이해하고자 했던 인간이었을 뿐이다. 

 

요조는 어떻게 됐을까? 요조는 이제 스물일곱인데, 사람들은 그를 마흔이 넘게 본다고 한다. 요조는 잘 살았을까? 그거야말로 전혀 가늠이 안 되는 이야기다. 다자이 오사무는 여러 번의 자살기도를 했고 39살에 내연녀와 투신하여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동반자살 시도만 3번. 함께 죽고자 했던 여성들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모르나, 다자이는 두 번째까지는 살아있었으니 질책을 받을 만한 것 같다. 이는 요조의 삶에도 투영되었는데, 그렇다면 요조의 마지막도 그러했을까? 요조는 모든 것은 지나간다라고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마무리했는데 말이다. 그것은 초연일수도 아니면 체념일 수도. 

 

꽂히면 한 동안 매달리는 성격이라, 같은 영화, 음악, 책도 몇 번씩 보는데 아마 인간실격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나는 그의 담담한 문체도 좋고, 길고 긴 문장도, 쉼표도 좋다. 그리고 확실하게 내리꽂아주는 도끼도 좋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야, 그리고 아직 읽을 글들이 있어서도 좋다. 언젠가 원서로도 읽어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221207

 

인용 출처 :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소와다리, 김동근 옮김, 2015.03.15

이 책의 뒤에는 미완성본인 굿바이 라는 원고도 들어있는데, 아 이런 글도 쓰는구나 싶은. 어이없으면서 웃긴 이야기다. 미완성이라 아쉽다. 뒷얘기 궁금해. 근데 왠지 이거 초월번역인 듯 ㅋㅋ 미안합니다람쥐/한놈,두시기, 석 삼, 너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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